공자는 당면한 사회적 위기의 근본 원인을 바로 통치자인 군자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찾았다. 공자에 의하면 천하에는 더 이상 질서가 없었다(天下無道). 이런 상황에서 공자는 천하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정명사상, 즉 주례에의 복귀와 통치자들의 윤리적 교양이라는 두 가지 요청을 내놓은 것이
정명사상의 내용이다. 국가도 가정도 일단 단체 회사에도 각기 구성원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사장․부모 등 모두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이름에 합당하는 본분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지고 정당하게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 공자의 정명사상은 개인에게 있어
1. 정명이란
공자가 정치를 하게 되면 반드시 먼저 하겠다고 한 「正名」이란 무엇인가? 후세의 設 들을 살펴보며, 첫째, 漢代의 馬融은 「백가지 일의 名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즉 百事의 명이 그 實과 부합하도록 名實相符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종자도 「名과 實을 相須하게 하는
Ⅰ. 공자의 철학
공자의 철학은 첫째로 당시까지는 일반적으로 평민층보다 높은 계층에 속했던 조상의 후예와 명문출신의 사람을 가리키던 君子라는 말을 선과 진리와 미를 다 같이 갖춘 이상적인 인간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출생과 관계없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믿어 신분에
공자일 것이다. 공자는 춘추말기의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이면서 유가학설의 창시자이다. 공자는 관학위주로 되어있던 춘추시대에 유가로 민간을 위주로 한 사학을 개창하면서 일생동안 삼천 여명의 제자를 거느렸고 능통한 수제자도 많이 배출해 낸 훌륭한 교육가였다. 공자는 옛날 성현이나
1절: 공자의 인간이해와 ‘行仁’
일반적으로 동서철학사에서 성선론자와 성악론자의 사상적 공통점이 각각 있다. 성선론자는 대개 인간의 자연 상태는 선하나 문화생활(역사생활)에서 인간이 이기심으로 타락하기 시작하였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성악론자는 정반대로 인간의 자연 상태는 이
공자일 것이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사상과 학문을 도입한 중국학자들은 중학(中學)과 서학(西學)의 조화를 추구해 나간다. 그러나 이들은 결과적으로 다시 공자(孔子, B.C 551~479) 사상에 귀착되고 만다. 즉 그들은 서구의 민주주의적 평등 개념을 접하여 이를 다
2. 공자의 학설
공자의 학설은 두 방면으로 나뉘어 서술해야 한다. 하나는 공자학설의 구체적 내용이요, 그 다음은 공자학설이 대표하는 정신방향이다.
학설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기본이론과 파생이론으로 나눌 수 있다. 대개 하나의 사상체계를 세우고자 할때 그 학설을 대체로 이 두 부분으로 이루
공자가 추구한 정명사상의 내용은 제나라 경공의 질문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답변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임금은 임금의 역할을 하고 신하는 신하의 역할을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아들은 아들의 역할